음악이라는 경험의 확장

 

소유가 목적이 아니라 경험을 구매하고, 경험에 투자하는 요즘 시대. 그렇다면 단순히 컨텐츠로 소비하는 음악이 아니라 음악을 경험한다는 건 뭘까. 사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적 경험’을 하고 있었다.

  •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들으며 잠들었던 경험

  • 등산하다가 힘들어서 기운을 내기 위해 노래하며 올라갔던 경험

  • 샤워를 하고 나와서 기분 좋아져 노래를 흥얼 거리던 경험

  •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이 생각나는 경험

  • 술을 마시면 특정 노래가 부르고 싶어지는 경험

각자의 노래는 다르겠지만, 누구나 하나쯤 관련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비 내릴 때 사람들의 기분 상태를 말해주는 멜론 실시간 검색어 순위

비 내릴 때 사람들의 기분 상태를 말해주는 멜론 실시간 검색어 순위

음악적 경험은 알게 모르게 일상 속에서 우리의 경험을 확장 시켜왔다. 수 많은 경험 중에서도 음악과 날씨의 만남이 갖고 있는 힘은 대단하다. 날씨 역시 음악처럼 보이지 않지만 일상과 기분을 결정 짓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기나긴 겨울 끝에 달뜬 봄바람이 불어오면 ‘벚꽃엔딩’이 역주행을 시작하고, 요즘 같은 추위에는 거리에 캐롤이 울려퍼지고. 비가 내리면 멜론 검색어에는 ‘폴킴’, ‘비’, ‘비도 오고 그래서’(헤이즈) 같은 검색어가 오른다. 많은 이들이 날씨를 매개로 한 음악적 경험을 하고 있다. 나아가 노래를 듣는 청자 뿐만 아니라 노래를 만드는 뮤지션, 예술가들에게도 영감을 주는 중요한 존재다.


날씨,전시 그리고 음악의 만남

“뮤지션들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우리도 날씨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고, 듣고 싶어지는 노래가 달라지지 않나.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입체적으로 전시와 함게 묶여있는 느낌의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네이버 디자인> 인터뷰, 스페이스오디티

그래서 디뮤지엄이 ‘날씨’ 전시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함께 할 재미 있는 무언가가 없을까 제안 했을 때, 스페이스오디티는 전부터 만들고 싶었던 ‘날씨’ 시리즈에 대한 아이디어를 자연스레 떠올렸다.

스페이스오디티가 모니터링 해왔던 수많은 현상과 경험들 속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음악의 가능성을 보아왔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날씨를 주제로 삼아 음악적 경험을 확장시키는 프로젝트로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만큼 좋은 컨텐츠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디뮤지엄과 스페이스오디티 함께한 최초의 전시 OST 티저 포스터

지난 8월, 디뮤지엄과 스페이스오디티 함께한 최초의 전시 OST 티저 포스터

날씨별 테마곡이라는 아이디어를 발전 시켜 ’전시 OST’라는 아이디어에 이르게 된다. 날씨+전시와 관객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할 음악이자, 전시라는 컨텐츠에서 파생된 Original Sound Track 개념이었다. 전시를 경험하고 그 느낌을 고스란히 담을 음악을 누가 만들지.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에 대한 기준은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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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시에서 느낀 것을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 일 것.

  2. 디뮤지엄 전시 관람객들, 문화에 관심 있는 소비자들의 취향에 부합할 것.

  3. 다양한 날씨를 풍부하게 담아낼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일 것.

뮤지션을 선정함에 있어서 이 세 가지 포인트가 가장 중요했다. 그에 맞게 네 팀(세이수미, 오존, 이진아, 오르내림&히피는집시였다)을 꾸렸다. 프로젝트 참여 뮤지션들에게 전시를 보고 각 각의 전시 섹션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과 날씨 테마를 담은 송라이팅을 요청했다. 단순히 날씨에서 출발한 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날씨에서 영감을 받은 사진, 영상 등을 보고, 거기서 또 다시 영감의 소재를 찾는 것.

그것은 날씨 자체에서 받는 영감과는 또 다른 영감이자 모티브였다. 이진아가 파란 하늘을 보고 노래를 만드는 것과, 전시장에서 ‘Always with us' 라는 이름의 사진 한 장을 보고 하늘의 존재, 파랑의 느낌을 담아 노래를 만드는 것은 뮤지션에게도 또다른 경험이다.

올리비아 비(Olivia Bee) 작가의 <Kids in love> 시리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알 수 없는 불안과 단순함, 여린 표정들, 싱그러움을 느꼈고. 꼬지 않고 좋아하는 걸 그대로 드러내는, 단순해서 아름다운 젊음의 모습들을 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젊음 속에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두려움이 깔려 있고, 스스로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만나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며, 함께 있을 때면 모든 상황이 나아지는 것 같은, 그런 싱그러운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인디포스트, 세이수미 인터뷰

올리비아 비의 사진과 전시 테마 ‘햇살’에서 영감을 받은 세이수미의 ‘We just’(VIDEO BY GABWORKS)

"음악만 들어도 특정장면이 생각나는 경험은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전시의 경우, 관람하기 전 포스터만 봤을 때 드는 호기심이 있다. 하지만 전시를 보고 난 이후에는..전시가 끝난 후 소장하거나 마음 속에 담아둘 수 있을만한 것이 없어서 늘 아쉬웠다. 물론, 사진 속에 담을 수는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전시에 대한 기억을 회생할 수 있는 매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시의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을만한 어떤 것.”

-<네이버 디자인> 인터뷰, 디뮤지엄 전선영 홍보마케팅 팀장

관람객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다. 음원 사이트에서 세이수미가 만든 노래를 플레이하고 여름, 바다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디뮤지엄 전시에 가서, 햇살 아래 널부러져 있는 청춘을 담은 ‘올리비아 비’ 사진을 보며-혹은 보러가기 전 후에 세이수미의 음악을 듣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음악적 경험이다. 우리는 이것을 기대했다. 즉, 전시라는 경험에 음악이 더해져, 관람객의 감상 나아가 경험이 확장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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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험의 확장이라는 것은 여러 요소가 조화롭고 하나의 맥락을 가지고 있을 때를 전제로 한다. 전시라는 1차적인 경험을 망치거나, 전시와 음악이 동 떨어져 보이는 것은 주의해야했다. 음악에서 파생되는 영상과 한정판 LP 제작은 그런 점에서 전시와 일관된 비주얼 톤앤매너를 유지하도록 신경 썼다. 영상에는 전시 타이틀에 사용된 캘리그라피를 집어넣고, 엘피에는 전시 타이틀 <Weather: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라는 질문에 맞게 각자가 기분에 맞는 사진으로 커버를 갈아 끼울 수 있도록 투명 패키지로 제작했다. 엘피를 또 하나의 아트웍처럼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뮤비 감독이지만 동시에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전시에 필름으로 참여

한 작가이기도 한 GABWORKS(갑웍스) 와 함께 네 편의 숏 필름을 만들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였고 동시에 뮤지션들과 호흡하며 뮤비를 연출해온 이행갑 감독과 함께한 작업은 중요했다. 전시 컨텐츠의 맥락을 해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비주얼적인 통일감을 주고, 음악에 담긴 날씨와 작품의 분위기를 표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다음은 프로젝트에 대해 GABWORKS와 나눈 인터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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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WITH GABWORKS

프로젝트 참여를 하게 된 결정적 계기

GABWORKS(G) : 디뮤지엄 ‘Weather :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전시의 작가로 참여하고 있었고, 전시작업을 하면서 정말 즐거웠어요. 그리고 이 뮤직 필름 프로젝트도 연장선 상에 있었기 때문에 참여하고 싶었어요. 다양한 뮤지션들의 음악을 듣고 영상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늘 흥미로워요.

중점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

G 무엇보다도 각각의 음악이 주는 분위기와 감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자 노력했어요.일단 네 편의 영상이 모두 날씨와 관련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지역과 환경에서 촬영할지가 제일 중요했어요. 로케이션을 선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촬영을 하면서 날씨 운이 따라줘야 했기 때문에 걱정도 되었어요. 모든 작업이 즐겁고 흥미로웠어요. 각각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잘 마무리 된 것 같아서 좋아요.

작업하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G 작가로서 전시 작업을 한 것 같았어요. 상업 뮤직비디오 보다는 아무래도 자유롭게 생각하고 진행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영감을 얻는 순간이 있다면

G 여행은 늘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제 안에 차곡차곡 무언가 쌓였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강아지와 산책할 때 생각이 잘 정리되는 것 같아요. 생각이 차분해지면 저절로 무언가 떠오른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
G 늘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어떤 작업을 하더라도 즐겁게 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해요.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연결고리로써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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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한 달 동안 여름,햇살(세이수미)-여름,달빛(오존)-여름,비(오르내림,히피는집시였다)-파랑(이진아) 이라는 네 가지 전시 테마이자 날씨에 맞게 음원을 냈고, 마지막 음원이 나오는 날에는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여름의 끝’을 테마로 참여 뮤지션들과 함께 기획 공연을 했다.

전시장 안팎에서 복합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한정판 LP를 제작하고 공연을 기획했으며 전시 기간 내내 디뮤지엄 입구에서는 우리가 만든 음악과 비디오가 흘러나왔다. 기존 OST처럼 디지털로만 한정적으로 소비되는게 아니라 전시 관람객들이 전시 이후에도 눈으로, 피부로, 경험으로 전시를 간직할 수 있도록 고민한 결과였다.

입체적인 음악과 전시의 경험

입체적인 음악과 전시의 경험

경험을 연결하고 확장 시키는 좋은 방법

스페이스오디티가 만들고자 했던 ‘최초의 전시 OST’는 음원+영상+MD+공연을 통해 전시를 보고 나온 각각의 관람객들이 날씨와 작품에 대한 감상을 간직 할 수 있는 매개체를 역할을 하는 거였다. 음악과 다른 분야의 컨텐츠를 연결 시키고, 그 것을 경험 할 때 경험의 확장성과 지속성은 더욱 무한해지기 때문이다. 설령 전시를 가지 못했더라도 음원을 통해 전시의 무드를 간접적으로 느끼게끔 하거나, 똑같은 전시를 봤지만 내가 발견하지 못한 작품과 감상을, 음악 속에서 발견한다면 전시를 다녀온 것 이상으로 무언가 마음에 남지 않을까?

음악은 경험을 연결하고 확장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한 가지다. 우연히 거리에서 듣게된 노래 한 구절로, 영화의 한 장면부터 그 영화를 봤던 그 시절의 사적인 순간과 시간의 공기까지 생각 나는 것처럼. 전시가 종료된 지금도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지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