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회사에서 티셔츠를 왜 팔아요?
케이스 스터디 #1 👩💻 스페이스오디티가 텀블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얻은 인사이트
며칠 전 DMZ 페스티벌을 갔다가 기분 좋게 놀랐습니다. ‘스페이스오디티 티셔츠'를 입은 분들이 보였거든요. 스페이스오디티는 왜 회사 티셔츠를 텀블벅에서 팔았으며, 사람들은 왜 이 티셔츠를 구매한 것일까요?
지난 4월, 스페이스오디티 2주년을 기념하며 쓴 글에서 어쩌다 회사 티셔츠를 텀블벅에서 판매하게 됐는지 올렸는데요, 꽤 즉흥적으로 시작했던 텀블벅 프로젝트는 목표의 약 1400%!를 달성하며 176명의 후원자와 약 580만원의 금액을 모았습니다.
시작은 가벼웠어도 정성껏 준비한 회사 티셔츠가 판매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브랜딩, 팬덤과 관련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텀블벅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을 되돌아보며 이 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와 후기를 공유합니다.
텀블벅 프로젝트의 시작과 비하인드 스토리
텀블벅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케이트가 “스페이스오디티 2주년을 기념해 티셔츠를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슬랙에 바로 투표창이 열렸습니다.
슬랙 투표 화면
케이트는 티셔츠 앞면에 ‘space’ 뒷면에 ‘oddity’를 넣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요원들로부터 대다수의 ‘좋아요'를 받은 뒤 디자인 작업에 들어갔고, 몇 가지 디자인 선택지로 다시 한번 투표를 열었어요.
케이트가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은 ‘요원들이 실제로 입고 다니는 티셔츠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티셔츠 위의 폰트는 두 가지였어요. 최종 선택된, 현재 티셔츠에 있는 ‘울트라(ultra)’체와 스페이스오디티 로고에 쓰인 ‘퓨추라(futura)’체. 결과는? 요원들이 실제로 입을 것 같다고 투표한 1위, 2위 티셔츠는 모두 ‘울트라'체를 쓰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브랜딩 적인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스페이스오디티 티셔츠인데 우리 로고에 쓰인 퓨추라에서 벗어나도 될까? 하는 고민이 시작됐어요.
벡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눈 뒤 케이트, 쏘이와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다시 들여다보며 고민했고, 각 방향의 장단점을 따져봤습니다. 그리고 이번 티셔츠는 다른 폰트를 써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결론을 내린 이유는 브랜드 가이드와 함께 슬랙에 곧바로 공유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슬랙 캡처 화면을 참고해주세요!)
오디티 스테이션 구독자들의 도움을 받다
티셔츠 디자인과 폰트를 정한 후, 최종 시안을 정하는 데는 오디티 스테이션 구독자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앞면에 space가 작게 들어간 버전과 크게 들어간 버전으로 투표를 열었는데 놀랍게도 총 266명이 참여해주셨어요. 오디티 내부에서도 50:50으로 나뉜 결과는 이번에도 거의 50:50으로 박빙이었습니다.
투표 끝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받았는데요, 구독자들이 써준 글을 읽으면서 재밌기도 하고 많이 감사했습니다. 반응을 보며 ‘스페이스오디티 티셔츠'를 외부에 있는 분들과 나눠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스페이스오디티 티셔츠'의 최종 시안은 오디티 스테이션 구독자들의 의견에 따라 결정됐습니다. 구독자들에게 의견을 구한 이유는 작은 경험일지라도 우리를 좋아해 주는 분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브랜딩은 ‘관계'입니다. 오디티 스테이션은 처음부터 스페이스오디티를 좋아해 주는 분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지속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구독자들로부터 스페이스오디티의 티셔츠 디자인 투표를 받은 건 그 목적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종종 이런 작은 이벤트를 할 때 우리에게 건네는 응원의 메시지로부터 가장 큰 보상을 받습니다. 😌
시작은 가볍게 준비는 철저하게
텀블벅 프로젝트는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티셔츠가 안 팔려도 괜찮다'는 요원들의 동의를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준비는 철저하게 했습니다.
목표 금액은 2주년 기념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인만큼, 스페이스오디티 창립일 4월 19일에 맞춰 419,000원으로 잡았습니다. ‘스페이스오디티'를 모르는 사람들도 후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부터, 회사 소개와 오디티의 정의, 상품 소개까지 꼼꼼히 작성했어요. 큰 줄기는 저(애슐리)와 케이트가 잡고, 쏘이가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스페이스오디티의 꼼꼼한 요원들 안드레와 애나로부터 여러 피드백을 받으며 내용을 보완했습니다. 안드레는 소비자 입장에서 후원하기 전에 드는 궁금증을 정리해줬고, 애나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꼼꼼히 확인해줬어요.
We are all oddities
‘스페이스오디티 티셔츠’는 세상의 모든 오디티를 위한 티셔츠입니다. ‘오디티’는 한마디로 ‘자기만의 길을 자기다운 방식으로 만들어나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좀 더 쉽고 와닿게 만들기 위해 쏘이의 손글씨가 더해져 오디티 체크리스트도 만들었어요.
세상의 모든 오디티를 위한 특별 제작 티셔츠
티셔츠 디자인은 케이트가 맡았습니다. 기존 티셔츠에 글씨만 프린팅하는 방식이 아니라 원단부터 봉제선과 핏(fit)까지 하나하나 디자인을 꼼꼼히 고르고 따져 만들었어요. 국내 패션 브랜드들의 티셔츠를 만드는 업체와 함께 생산하며, ‘스페이스오디티' 로고 라벨을 추가했습니다.
따로 또 같이 매력있는 스페이스오디티 티셔츠
스페이스오디티는 함께 있어도 매력적이지만 떼어놓고 봐도 각자 매력적인 단어입니다. 앞면에는 우주를 의미하는 ‘space’, 뒷면에는 괴짜를 의미하는 ‘oddity’. 두 단어를 티셔츠 앞뒤에 넣어서 따로 또 같이 재미있는 시너지를 내는 티셔츠를 디자인했습니다.
샘플을 받아보고 티셔츠 퀄리티에 자신이 생겼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냥 입고 다니고 싶은 티셔츠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에게도, 외부에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었습니다.
박상혁 작가와의 협업
All About Space Oddity 스티커는 박상혁 작가와의 콜라보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스티커는 작년 스페이스오디티 컨퍼런스의 관객들에게 줄 선물로 처음 제작되었는데요, 스티커 하나하나에 ‘스페이스오디티'와 관련된 스토리가 담겨있습니다.
Space Oddity Sticker Set #2 ‘All About Space Oddity’
이번 텀블벅 프로젝트에서는 오디티 요원들이 미팅 때 늘 선물로 들고 나가던 이 스티커 세트를 포함했습니다. 외부에 이 스티커를 제대로 소개한 적이 없고, 혹시 구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구할 기회를 준 적이 없었거든요. 이 스티커 중 3종을 미니 포스터로도 만들었습니다. 포스터와 봉투 모두 고급지에 프린트해 소장 가치를 높였습니다.
All About Space Oddity 미니 포스터 3종 세트
은근히 신경 썼던 패키지 디테일
텀블벅 프로젝트를 오픈하고 생각보다 많은 분이 후원해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티셔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원단 수급이 어려워 예정 배송일에서 한번 미뤄야했지만, 무엇보다 ‘퀄리티'에 가장 신경 쓰며 준비했습니다.
텀블벅 프로젝트에서 판매한 전체 상품 패키지
벡의 아이디어로 스페이스오디티 스탬프와 박스를 주문했고, 케이트가 스페이스오디티 로고로 박스테이프를 만들었습니다. 스페이스오디티 티셔츠와 All About Space Oddity 스티커와 포스터 모두 이야기가 담긴 상품들이다 보니 상품만 달랑 보내기보다는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땡큐레터와 함께 상품 소개를 예쁘게 프린트해 동봉했습니다. 상품 소개서를 통해 티셔츠에 담긴 의미를 한 번 더 전달하고, 단순한 스티커, 포스터가 아닌 아티스트가 작업한 ‘작품’임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왼쪽부터 땡큐레터, 스티커+포스터 소개, 티셔츠 소개
상품을 배송하기 전 스페이스오디티 요원 모두가 기다리는 가내수공업이 진행됐고, 여기에는 요원 모두가 함께했습니다. 이제는 뭐… 가내수공업 전문가 집단처럼 자연스러운 분업에 복잡한 과정들이 수월하게 착착 진행되며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쉽기도? 했어요. 종종 가내수공업을 하며 우리의 팀워크를 확인합니다.😂
요원들 모두의 도움으로 박스 170여개 포장 완성!
텀블벅 프로젝트 결과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의 텀블벅 프로젝트는 약 1400%를 달성하고 176명의 후원자와 약 580만원의 금액을 모았습니다. 엄청난 대박은 아닐지 몰라도 애초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놀랍고 감사한 결과였습니다.
텀블벅 상품들의 배송을 마친 뒤 인스타그램에는 스페이스오디티 티셔츠 인증샷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인스타그램 후기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케이트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요원들은 일상에서 이 티셔츠를 잘 입고 다니고 있습니다. 며칠 동안은 신기하게 요원들이 동시에 입고 온 적이 없었지만, 지난 목금요일에 동시에 입고 온 요원들이 있었네요. 😂
어쩌다보니 트윈룩 1
어쩌다보니 트윈룩2
텀블벅 프로젝트로부터 얻은 것
안드레가 ‘슈퍼팬덤'이란 책을 읽다가 우리 텀블벅 프로젝트가 생각났다며 전달해준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몸에 지니고 다니는 제품을 선택할 때 그 제품이 세상에 말하는 스토리를 선택 기준으로 삼는다. 가치는 그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 물건이 이 세상에 말하는 스토리에 담겨 있다.” - 조이 프라드밸래너 & 에런 글레이저, <슈퍼팬덤> 중
“스페이스오디티는 왜 텀블벅에서 회사 티셔츠를 판매했을까?”에 대한 답변은 위에서 충분히 공유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스페이스오디티 티셔츠를 구매했을까요?”
우리가 제품을 살 때 ‘실용성'에 기대는 경우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떤 제품에 깃든 브랜드의 이야기가 느껴질 때 보다 쉽게 지갑을 열게 됩니다. 이성을 넘어 감성적으로도 공감이 갈 때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집니다.
스페이스오디티 티셔츠는 탄생 과정 자체가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그대로 텀블벅으로 옮기고, 제품 자체의 퀄리티에 집중했어요. ‘오디티'의 정의에 공감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재밌게 봐준 분들이 후원도 해주지 않았을까요?
픽사 대표인 에드 캣멀이 쓴 <창의성을 지휘하라>에는 픽사가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이유가 나옵니다. 단편 애니메이션은 장편 애니메이션의 앞에 들어가 수익을 창출하지는 않지만, 픽사는 단편 제작 비용을 R&D 비용으로 생각했습니다.
“픽사의 단편 애니메이션은 두 가지 가치를 창출한다. 외부적으로는 관객들과의 유대를 강화한다. 내부적으로는 픽사 경영진이 예술성을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제작진에게 전달해 픽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강화한다.” - 에드 캣멀, <창의성을 지휘하라> 중
스페이스오디티의 텀블벅 프로젝트도 돈을 벌기 위해 진행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뜻밖의 결과와 함께 두 가지 가치를 창출했다고 생각합니다. 외부적으로는 스페이스오디티를 좋아해 주는 분들과 소통하며 유대를 강화할 수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와 작은 도전이 가능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시도였지만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스페이스오디티에서는 앞으로 이런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실험이 되어주기도 했고요. DMZ 페스티벌에서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마주쳤듯이, 오디티 요원들이 자연스럽게 티셔츠를 입고 다니듯이, 스페이스오디티는 누군가의 일상에 녹아들 수 있는 브랜드라는 걸 확인하게 된 작은 계기였습니다. 다시 한번 응원하고 구매해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
“러브 마크를 만든다는 것은 브랜드를 누군가의 일상의 일부로 만들며 멋진 경험을 주는 것이다.” - 케빈 로버츠, 사치앤사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