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필름에서 엑소 뮤비까지: 다니엘전 감독의 스펙트럼
일반적인 궤도를 벗어나 스스로 영역을 넓혀가는 이 시대의 오디티들의 이야기 '오디티 토크'. 지난 2월 13일, 광화문 위워크에서 열린 6번째 오디티 토크는 함윤호 공연 감독과 다니엘전 영상 감독이 ‘스펙트럼’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나라 1세대 패션 필름부터 엑소 등 여러 아티스트 뮤직비디오를 작업한 다니엘전 영상 감독의 발표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 지난 글 ‘스펙트럼 넓은 공연 연출의 비밀 (함윤호 감독 편)’에 이은 오디티 토크의 후기 포스팅입니다.
경험을 쌓으며 감독의 길로
안녕하세요, 다니엘전 감독입니다. 발표에 앞서, 제가 작업한 영상들을 먼저 보여 드릴게요.
저는 영국에서 공부를 했는데요, 영국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던 시기에 '패션 필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계기로 한국에 들어오게 됐어요. 사실 시작점은 패션필름이 아닌 영화였지만요.
학교 들어갈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아 공부를 하려 했는데 소질도 없었고 워낙 못 했어요. 영국에서 태어났음에도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많은 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영향을 끼쳤던 것 같고요.
학창시절에 '공부'는 못 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매체, 브랜드와 9년 동안 작업을 해왔어요. 되게 많죠?
저는 런던에 있는 킹스턴 유니버시티를 나왔는데요. 대학교를 갈 때도 시험을 보지 않고 포트폴리오로 들어갔어요. 영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공부'라는 것이 싫었어요. 그래서 실질적으로 부딪히며 배울 수 있는 작업들을 하며 사진과 그래픽디자인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학업 대신 방학 때나 시간이 남을 때 경험을 많이 쌓았어요. 한국에 들어와서 ‘도둑 맞곤 못 살아’라는 영화의 제작 진행을 했고, 아침드라마 FD도 했고, ‘찰리와 초콜릿 공장’ 소품 만들고, ‘윤도현의 러브레터’ 편집 진행도 했습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는 팀 버튼 감독이 저한테 도면을 가져와서 “이거 만들어줘” 하면 저는 사포질만 계속 해서 그걸 만들었죠. 이때 경험하고 느낀 게 많아요. 현장에서 여러 스태프들과 일을 하는 게 멋있었고, 감독이 원하는 그림이 실질적으로 나온다는 게 신기했어요.
최근에 선우정아의 천국은 나의 것 뮤비 작업을 했는데요. 제가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술 한잔 하면서 음악 컨셉을 생각하며 미술 감독과 같이 만든 그림이에요. 선우정아 씨가 우주인이면 좋겠고, 거기에 어떤 괴물이 등장하면 좋겠고... 그래서 이런 뮤비가 나왔어요. 애착이 많이 가는 작품이죠. 제작할 때 옛날 생각도 났고요.
“What is Fashion Film?”
저는 9년째 이 일을 한국에서 하고 있는데, 한국에선 패션 필름이 아직도 좀 생소하죠. 그래서 말보다는 제가 그동안 작업해 온 영상들을 보여드리며 설명해보려 합니다.
* 이번 글에서는 현장에서 보여준 영상 중 일부만 소개합니다. 더 많은 영상은 다니엘전 감독 비메오 채널에서 확인해주세요. :)
(D BY D SS 17)
세팅, 디렉션, 촬영까지 혼자서 다 한 영상이에요. 젊은 바이브가 많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해서 이런 컨셉으로 찍었죠. 여기랑은 7~8년 같이 했는데, 할 때마다 저에게 터치 없이 거의 100% 맡기세요. 저는 이런 작업이 ‘저만의 색’이 드러나기도 하고 저한테 유일하게 남을 수 있는 포트폴리오라고 생각해서 꾸준히 하고 있어요.
6년 전에 패션쇼에 나가지 못 하는 브랜드를 위한 패션쇼 영상을 만들기도 했는데요. 당시에 새로운 실험을 한 거죠. 그 영상을 본 엘르 잡지에서 의뢰가 들어오면서 패션쇼 백스테이지를 활용한 영상이 있냐고 묻더라고요. 그동안은 스케치 영상이 대부분이었는데, 그거 말고 아예 만들어서 찍자고 했어요.
(ELLE SHOWTIME MAY ISSUE)
백스테이지 현장처럼 영상을 만들었는데, 운이 좋게도 이 영상이 샌디에이고에서 6개 부문 노미네이트되기도 했어요. 아쉽게도 수상하진 못했지만요. (웃음)
(ELLE MAGAZINE YOON A & KAI)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패션 필름이 생소해요. 그냥 스케치가 아닌 나만의 컬러를 살려서 새로운 걸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만의 테크닉을 찾아서요.
이 영상을 찍을 때 카메라 슬로우모션 세팅을 하고, 포토그래퍼 최대한 뒤쪽으로 붙었어요. 보통 스케치 필름은 다 포토 쪽, 카메라 쪽을 같이 찍잖아요. 저는 최대한 모델이든 셀럽이든 제 카메라를 보게끔 만들었어요. 그래서 포토그래퍼 뒤에서 찍었죠. 그 중에서 엑소 카이 씨가 마음에 든다고 얘기했던 영상이에요.
이런 영상을 만들면서 여러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TWICE with W)
1대1 사이즈죠. 인스타그램에 맞는 영상이죠. 이런 영상이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지 않아요. 좌우로 잘리기 때문에. 그래도 트와이스니까… 즐겁게 촬영했습니다. (웃음)
이 영상이 좋았던 이유가, 카이/윤아 영상처럼 스케치 필름 아니라 100% 저에게 연출을 맡겨주었다는 거예요. 연출가로서 소통할 수 있는 범위와 권한이 늘었죠.
(DIOR with W)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영상을 많이 보던 시기에 디올 브랜드 작업한 영상이에요. 영상하는 사람으로서 좌우가 많이 잘려서 아쉬웠죠.
이후에 역으로 추천한 게 4:3 비율이에요. 옛날 TV 사이즈죠. 1:1보다는 넓고, 16:9보다는 꽉찬.
(VOGUE BLITZKIDS)
이 사이즈를 밀었는데 크게 흥행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LOWCLASSIC ‘MYSTERY GIRL FROM ASIA’ X W)
제가 더 좋아하는 영화 사이즈예요. 핸드폰에서 크게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어 달라고 했으나 저는 2.35:1을 고집했어요. 시 한 편을 읊는 영상을 만들었어요.
여태까지 보여준 영상들이 인스타그램이다보니 1분 이상으론 안 올라가요. 그래서 1분 미만으로 찍어야 했고, 처음 몇 초 안에 사로 잡아야 사람들이 보겠죠. 그게 저한테 큰 숙제였어요. 인스타그램이 생기면서, 1분 미만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 것.
(“YOUTH HAS NO RULES” BLACKYAK 16SUMMER COLLECTION starring SAE KYEUNG SHIN, BOM CHAN LEE & HEESUN KIM)
블랙야크는 원래 등산복을 주로 만드는 업체인데, 래쉬가드를 만들면서 젊은 사람 타깃으로 패션 필름을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패션 필름적인 걸 최대한 살려서 제 마음대로 찍을 수 있었고, 그래서 발리로 가서 찍은 영상이에요.
영화 ‘몽상가들’을 오마주하기도 하며 그런 요소를 담고 싶었어요. 안에 스토리를 가미해서 보는 사람도 그런 감정을 느끼게끔요.
(CLIO x KRYSTAL BEAUTY FILM)
패션 안에서도 국내에서 제일 많이 만드는 분야가 뷰티죠. 클리오에서 레트로 감성이 유행했을 때 만들었던 영상이에요. 여태까지 영상이랑 다른 점이, 기존에는 제가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컸지만 뷰티 쪽은 제한되는 게 많더라고요. 화장품 발색, 채도, 모델이나 연예인 피부, 제품 라벨이 정확하게 보여야 한다든지. 뷰티 쪽은 까다로운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았어요.
(HERA VIRAL MOTION AD)
그냥 프로덕트만 나오는 영상이에요. 중국이 메인 타깃인 영상이었죠. 황금 돼지 해이기도 하고요. 이건 촬영한 소스가 하나도 없어요. 3D 모션 그래픽으로 처리했죠. 제가 한 건 아니고요. 제가 이런 기술은 없지만 컨셉을 말하고 비주얼라이제이션을 같이 해서 이런 영상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다음은 엑소 뮤비예요. 보통 이런 뮤비 요청이 들어올 땐 저한테 전화가 와서 스케줄만 물어봐요. 스케줄이 되면 아티스트 알려주고 곡을 주면서 3주 안에 기획안을 써달라고 해요. 이 기획안은 5번째로 통과된 기획안이에요.
시놉시스도 쓰면서 컨셉, 카메라워크, 톤앤매너, 레퍼런스 비디오, 메인 아트 컨셉, 캐릭터에 맞는 공간 설정, 소품, 가사별로 어떤 씬이 들어갈지 등을 기획안에 담아요.
(EXO 엑소 'Tempo' MV)
다니엘전 감독의 SPECTRUM
지금까지 제가 작업한 영상물들을 보여드렸는데요. 제가 영상 작업을 할 때 추구하는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아요.
Stylish. 멋지고 우아한
Profound. 엄청난 느낌이나 깊은 이해
Emotional. 감정적
Conceptual. 작품이 구현하는 개념
Technique. 기법
Realism. 현실주의
Unique. 독특한
Multiplayer. (이걸 다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
이 앞 글자들을 따면 스펙트럼(SPECTRUM)이 되죠. (웃음) 초반에는 원맨 프로덕션으로 촬영했는데, 그걸 할 줄 알기에 엑소 뮤비를 찍을 때도 여러 분야를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어요. 그동안의 경험들이 모여서 넓은 스펙트럼의 기반이 된 것 같습니다.
Q&A
Q. 브랜드의 가치는 보이지 않는 건데,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보여줄 때 어떤 고민을 통해 만드시나요?
A. 전 사람을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작업 의뢰가 온 디자이너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에디터 등, 그런 분들이랑 미팅을 많이 가지죠. 문자 등으로 최대한 그들와 소통하고 공유해요.
어떻게 보면 클라이언트이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것을 구현해줘야 해요. 그 브랜드를 최대한 이해하는 게 제일 중요하고, 감독 연출가로서 색깔을 최대한 살리는 건 자기 몫인 것 같아요. 그 브랜드에서 추구하는 음악이나 편집 스타일 등은 스스로 찾아야 하고요.
제가 클라이언트와 주로 의견을 조율하는 방법은, 그 브랜드를 최대한 이해하고 저만의 방식으로 푼 방식과 클라이언트 요청으로 만든 영상을 각각 하나씩 준비해서 보여줘요. 그걸 보고 비교하도록 하죠. 그 클라이언트 의견을 듣고, 메뉴판처럼 그 안에서 고르도록 해서 제 색깔과 클라이언트 니즈를 충족시키는 영상을 만듭니다.
다니엘전 감독 비메오 채널에는 오늘 소개한 영상 외에도 수백 편의 영상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9년 동안 축적된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와- 멋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 분야를 오랫동안 판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경험의 축적이 주는 힘이 느껴지는 포트폴리오였습니다.
다니엘전 영상 감독과 함윤호 공연 감독은 스페이스오디티가 함께 하는 ‘아지트라이브’를 통해서도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요. 스펙트럼 넓은 두 감독의 작업물이 궁금하다면, 유튜브 아지트라이브 채널에서 확인해주세요.
앞으로도 두 감독의 스펙트럼 넓은 활동을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