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트럼 넓은 공연 연출의 비밀
일반적인 궤도를 벗어나 스스로 영역을 넓혀가는 이 시대의 오디티들의 이야기 '오디티 토크'. 지난 2월 13일, 광화문 위워크에서 열린 6번째 오디티 토크는 함윤호 공연 감독과 다니엘전 영상 감독이 ‘스펙트럼’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했습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팬 입장에서 가장 기다리는 것이 공연과 뮤직비디오가 아닌가 싶은데요. 오늘은 윤하, 이소라, 박재범, 싸이 등의 공연을 연출한 함윤호 공연 감독의 발표 내용 일부를 먼저 소개합니다.
* 지난 글 ‘영감을 주는 것들 [함윤호, 다니엘전 편]’에 이은 오디티 토크의 후기 포스팅입니다.
스펙트럼 넓은 공연 연출의 비밀
작년에 제가 연출한 공연은 윤하, 린, 엠씨더맥스, 다이나믹듀오 등이 있어요. 제가 공연 연출을 시작하고 난 다음부터 지금까지 했던 공연들은 성시경, 정재형, 싸이, 드렁큰타이거, 신승훈, 이효리, 언니네이발관, 윤미래, 정인, 엠블랙, 리쌍, 버즈 등이고요.
오늘 주제가 스펙트럼인데요. 스펙트럼이 좀 넓어 보이나요? 제가 했던 공연을 보여주면,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장르의 가수 공연을 연출할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저는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약간 의아한 면이 있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연출했던 공연들을 특별히 다른 공연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장르별 공연 연출 방법보다는 '공연 연출이라는 일'에 대한 제 생각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공연 연출이나 콘서트 연출을 얘기하면 뭐가 생각 나시나요? 보통 무대 연출을 생각하시는데, 제가 생각하는 건 관객이 아티스트와 한 공연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함께 만드는 경험을 연출하는 것이에요. 제가 오늘 이야기하는 토크도 일종의 공연이라고 생각한다면, 제가 준비한 게 있지만 여러분이 반응에 따라 변하겠죠. 그래서 저는 공연을 ‘관람’보다는 ‘경험’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주체는 아티스트와 관객이 되는 거고, 다루어야 하는 것은 공간과 시간이 되는 거죠. 물론 가장 중요한 매개체는 음악이고요.
“아티스트와 관객이 주체이고 공간과 시간을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만드는 것이 공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 연출의 세 가지 요소 1. 아티스트와 관객
제가 최근에 공연 연출을 했던 두 사람을 이야기할게요. 이소라 씨와, 박재범 씨. 관심이 없는 분들이 있더라도, 이소라나 박재범의 음악 성격이나 공연 스타일이 다를 거라는 짐작은 있으시죠? 실제로 굉장히 다른 스타일의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 두 명입니다.
이소라는 좋은 목소리가 굉장한 강점이고, 발라의 위주의 히트곡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본인이 가사를 직접 쓰는 경우가 많고 가삿말이 아름다운 곡들이 많죠. 외로움이나 고독, 슬픔 등을 담고 있고요.
반면, 제가 생각하는 박재범의 강점은 노래, 랩, 춤을 한꺼번에 다 잘 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R&B에서 힙합까지 다양한 장르를 굉장한 실력으로 소화해내는 가수죠. 다양한 퍼포먼스가 가능하고 폭넓은 감성을 가지고 있고요.
이 공연을 통해 관객들이 얻어가는 것. 이 사람들의 노래가 관객들에게 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소라는 위로라고 생각하고, 박재범은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해요. 이것을 관객의 측면으로 생각해볼게요.
이소라의 공연이 있고 박재범의 공연이 있어요. 이소라 공연에 와서 관객이 위로를 받고, 박재범 공연에 와서 즐거움을 얻는다면 그 공연이 좋은 경험이겠죠? 이소라 공연에 오는 사람이 재미를 얻기 위해 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잖아요. 그래서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아티스트 공연을 만들 때 어떤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 하냐면, 방해하지 않는 것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는 거예요.
이소라 공연에서는 관객이 노래를 듣고 공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연출이 방해하지 않아야 해요. 이소라 노래는 친구들이랑 다 같이 듣기보다는 이어폰을 꽂고 혼자 있는 시간에 몰입하면서 듣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연출이 재밌거나 멋진 것을 하려고 화려하게 한다면 방해가 되죠. 그래서 그런 방해 요소를 안 넣으려고 해요. 반면, 박재범 공연에서는 노래를 듣고 공연을 즐겁게 즐길 수 있도록 연출이 최선을 다해 도와주죠. 관객들이 다양한 퍼포먼스를 즐길 수 있도록 조명이나 무대 효과 등으로 열심히 관객들을 자극하고요.
공연 연출의 세 가지 요소 2. 공간
공연 연출에 있어서 다루는 일반적인 공간은 무엇일까요? 무대겠죠. 그런데 무대도 물론 중요하지만, 관객이 있는 곳을 포함한 공연장 전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흔히 공연 연출을 한다고 하면 무대에만 신경 쓰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관객이 이 공연을 어떻게 바라볼지 고민하는 거예요.
실제로 제가 공연할 때 공간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 예시를 보여드릴게요.
왼쪽이 이소라 공연 무대고, 오른쪽이 린 공연 무대예요. 공통점은 둘 다 무대가 하얀색이에요. 일반적으로 콘서트나 공연 무대를 만들 때 하얀색은 굉장히 피하는 색 중 하나예요. 암전이 제대로 되지 않고, 무대에서 나오는 조명이 반사 되었을 때 컨트롤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서 예쁘게 스타일링하기 어렵죠. 그런데 왜 이 두 가수의 무대가 둘 다 화이트일까요?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두 분의 공연이 다 ‘노래를 듣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관객들이 노래 듣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조명이 무대 안에서 머무는 경우가 많고, 무대 색깔을 바꾸거나 관객석을 비춰서 무대를 방해하지 않아요.
다른 점이 있다면, 이소라 공연장은 거의 대부분의 관객들이 정면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정면에서 보기 예쁜 스타일로 디자인 되어야겠죠. 반대로 린 공연장은 거의 대부분의 관객들이 무대를 내려다 보는 구조예요. 모든 좌석이 계단식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무대 바닥을 쳐다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무대 바닥을 본다는 것을 감안해서 이걸 다루어야 했어요.
그렇다면 박재범 공연은 어떨까요. 이 공연은 컨셉 자체가 박재범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공연이었어요. R&B부터 힙합까지 다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있었고, 이틀 동안 60곡 정도를 라이브로 한 것 같아요. 굉장히 다양한 퍼포먼스가 빛날 수 있게, 가장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게 만들어야겠죠. 이를 테면 무대가 정지해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게 더 좋겠죠. 그런 것들을 감안해서 공간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 건데요.
메이킹필름에 나온 의상 갯수만 봐도 얼마나 많은 스타일의 무대를 했는지 아시겠죠?
이틀 동안 했던 공연인데, 제가 생각해도 너무하지 않나 싶을 정도의 스테이지를 보여 줬거든요. 이런 공연을 만들 때는 관객과 같이 있는 공연장 전체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지만, 그 이외에 저 다양한 무대들의 각각의 퍼포먼스가 빛날 수 있는지 고려하면서 공간 계획을 세워야했어요.
공연 연출의 세 가지 요소 3. 시간
여러분들 영화 보는 거 좋아하시나요? 저도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데, 우리가 ‘공연을 보는 행위’와 ‘영화를 보는 행위’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뭐를 볼지 고른다, 티켓을 구매한다,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다, 자기 자리에 앉아서 약 2시간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떻게 시간을 다룰까요? 영화가 시간을 다루는 방법을 보면 제가 이 공연에서 시간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배울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마블 덕후인 제가 여러 번 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로 예를 들어볼게요. 이 영화는 굉장히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이고 오락적인 영화잖아요. 제가 하는 콘서트나 공연 역시 즐거움이 중요한 콘텐츠예요. 콘텐츠에 작품성을 바라진 않죠. 사람들이 받고 싶은 감정을 갖게 하면 되고요. 그래서 저는 이런 오락 영화의 화법이 공부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2시간 반 정도 시간이거든요? 그 시간 동안 어두운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어떻게 시간을 다루는가를 나름대로 분석해봤어요. 제 공연을 보는 관객들도 어두운 곳에서 2시간 반 동안 있잖아요. 그래서 영화의 시간과 스토리를 분석해보게 되는데, 이 분석 안에는 감정적인 것도 있어요. 기쁜 감정, 슬픔, 패배라는 감정.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적인 변화가 있어야 덜 지루하겠죠? 저는 감정을 기준으로 영화 타임라인을 생각해봤어요.
시작하자마자 토르가 패배를 합니다. 헐크도 바로 져요. 그리고 로키가 죽어요. 그동안 한 번도 죽지 않았던 로키가 9분만에. 그래서 관객들에게 굉장한 좌절감을 주고 시작해요.
11분째 되는 시점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영화 제목이 나와요.
원래 영화는 제목이 나오고 시작하잖아요. 근데 이 영화는 토르가 지고 헐크가 지고 로키가 죽고 난 다음에 제목이 나와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거죠. 엄청난 좌절을 맛보게 해놓고.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요? 일상에서 공연장에 들어온 관객들이 최대한 이 영화에 빨리 몰입하도록 한 장치인 거예요. 숨가쁜 일들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몰입했을 때 쯤에 제목을 보여주는 거죠.
보통 공연은 오프닝 무대가 화려하죠? 시작할 때 폭죽이 터지고 되게 멋있게 등장하고. 11분이 되는 시점에 뭘 하죠? 인사를 하죠. “안녕하세요, 누구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영화에서 굉장히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일반적으로 상업영화, 오락영화에 있어서 위기, 패배, 슬픔에 해당하는 감정이 저렇게까지 많이 나오진 않아요. 근데 이 영화는 후속편을 위한 준비 과정이기 때문에 계속 지면서 진행되죠. 하지만 중간에 희망이 있어요. 왜냐,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2시간 반동안 이 영화는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 끌고 이 영화에 몰입하게 하면서 끌고 가요. 시간을 다루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거죠.
이걸 공연이라고 하면 여기서 나오는 각각의 사건들이 노래라고 할 수 있겠죠. 아래쪽은 슬픈 노래 내지는 템포가 느린 노래. 위쪽은 템포가 빠른 노래 혹은 기쁘거나 좋은 감정을 가진 노래. 스토리가 없지만 노래를 가지고 저 긴 타임라인 동안 일정한 흐름을 만들어내죠. 관객들을 공연에 몰입하게 하기 위해서. 음악이 가진 템포나 감정의 깊이를 가지고 공연의 흐름을 만드는 건 아주 기본적이고 중요한 연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 연출의 본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
이런 생각 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라도 본질이 같아서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경계가 허물어지고 플랫폼보다 콘텐츠가 중요해진다는 얘기도 많이 하죠. 저는 여러 분야에서 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아지트라이브도 하게 됐고 이 자리에서 마이크 잡고 얘기도 하게 됐죠.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이 일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에요. 이걸 좀 더 넓게 생각해보면 공간이나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있어요. 때로는 이 매개체가 음악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 주체가 아티스트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해요. 제가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대상이 관객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결국 넓게 보았을 때 공연 연출의 본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제 일을 제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 본질 자체를 공유하는 일이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장르의 일을 플랫폼을 넘나들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더 많은 매체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Q&A
Q. 공연장에서 연출할 때 아티스트 혹은 관객 반응이 예상과 다르게 전개된 적은 없나요? 그랬을 때 어땠나요?
A. 제가 공연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고 했잖아요? 관객이 어떤 감정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마음을 움직이면 그만이다’예요. 우리가 한 노래를 들을 때 사람들이 다 똑같이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제가 공연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연출했더라도 다른 반응이 있다고 해서 당황스럽진 않아요. 오히려 아무 반응이 없는 게 당황스럽죠. 한국에선 빵빵 터졌는데 해외에선 안 웃거나. 이런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현장에서 대처하는 방법은 없고, 현지 스탭들과 회의해서, 어떤 부분이 관객들을 당황하게 했는지 파악하고 그 다음 공연에서 수정해요.
함윤호 공연 감독의 오디티 토크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영화에서 참고하여 공연을 연출했다는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어요. 저는 콘서트를 자주 가는 편인데, 강연 내용을 듣다보니 정말 영화와 콘서트의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어떤 일을 할 때 벤치마킹을 하거나 케이스스터디를 하는 대상이 같은 영역인 경우가 많은데요. 이처럼 시야를 넓혀서 다른 영역을 통해 배우는 것도 스펙트럼 넓은 기획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니엘전 영상 감독의 발표 내용은 추후에 별도로 발행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