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마음으로, 젊은 감독 정진수 이야기
일반적인 궤도를 벗어나 스스로 영역을 넓혀가는 이 시대의 오디티들의 이야기 '오디티 토크'. 세 번째 주인공은 비주얼스프롬 정진수 감독이었다. 지코, 수지, 혁오 등 젊고 감각적인 뮤지션들이 찾는 89년생 뮤비 감독. 방송부터 그래픽 스튜디오까지 다양한 현장을 거쳤던, 치열한 시간과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지난 글 1부- '영감을 주는 것들'[비주얼스프롬 편]에 이어, 3월 14일 광화문 위워크에서 열린 오디티 토크의 후기 포스팅입니다.
Visuals from - Joined 9 years ago (on vimeo)
어떤 내용으로 이야기를 해야 할 지 고민해 보다가, 지난 작업들을 정리해 놓은 비메오를 한참 들여다 보게 되었어요. 스튜디오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혁오나 지코씨의 뮤직비디오를 만들게 되면서 부터였는데, 패션지 등의 인터뷰를 하며 ‘엠티비 세대’ 와 같은 단어들을 보게 되었고. 우리들은 ‘유튜브 세대’ 가 아닐까 생각해 보다, 사실 제가 정말 인터넷 상의 영상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는 비메오를 접하면서부터였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9년 전 가입’ 이라는 숫자가 나름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고요.
처음부터 뮤직비디오를 만들 기회가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히.. 대학에서는 미술 이론을 전공했는데, 원래는 시각디자인과를 준비했어요. 다만 그림을 못 그려서 전과를 많이 시도했는데, 학점이 고만고만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결국 혼자서 컴퓨터로 공부하고, 비메오에 올라온 비디오들을 보면서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 중간에 학교 선배나 일을 도와주셨던 분들 덕분에 작은 다큐멘터리나 짧은 영상들을 만들어 볼 기회가 조금씩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또 한동안 좀 헤매다가 비메오에 작업을 퍼블리싱 하면서 가닥을 잡은 사람이죠. 마치 디자이너분들이 비핸스를 쓰는 것처럼, 외국 관계자들이 보고 인크루팅이 가능하니까 뭐라도 영어로 적어놓고 반응을 기다려보자 이런 생각으로 조금씩 비디오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막내와 '작가' 사이
방송이나 광고 현장, 이런저런 분야의 막내를 전전하는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그러다 사진 스튜디오에서 알바를 하며 사진을 배웠고,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고요. 영상은 뮤비가 아니라 개인적인 작업들-당시에는 갤러리에 들어가는 영상 설치물 위주로 시작했고요. 특정한 장르에 묶이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다음 단계로의 발전이 있으려면 어떤 분야에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죠.
'관계를 통해 제작되는 것’이 사진이라고 느꼈고. '혼자 시작해 볼 수 있는 것’이 그래픽 또는 기획이라고 느끼면서 전 이 두 가지가 결합된 영상쪽으로 가닥을 잡아온 거 같아요. 영상으로 방향을 잡고도 뮤직비디오나 광고, 다큐멘터리 그리고 설치 비디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커리어를 쌓다가 비교적 최근에서야 뮤직비디오를 기반으로 자리 잡은 스튜디오가 됐죠. 일단 '공드리'를 보고 본격적으로 시작해야할 거 같은데요.
'공드리'를 보고 지코씨가 연락이 왔어요. 저는 혁오의 뮤직비디오를 만들때와 마찬가지로, 아직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기획서 이상의 콘티들은 현장에서 그려야 하고, 어떤 이미지들(전 주로 영화를 몇 가지 소재로 생각하며 컨셉을 설명합니다) 만 가지고 작업에 임하고 싶다고 부탁했는데, 혁오가 그랬듯 지코씨도 쿨하게 받아줬어요. “공드리도 똑같은 방법으로로 나온거냐” 면서요. (웃음) 그래서 찍게 됐죠. 아직까지도 '공드리'와 '오만과 편견', 두 뮤직비디오를 통해 저희를 알게 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돈 때문에 취향 접고 간다라고 생각되는 부류의 일은 피하고,
진심으로 결과물에 떳떳할 수 있겠다 싶은 걸 만들려고 하는거죠."
감독이 작업을 초이스 하는 게 아니라, 작업이 감독을 초이스 하는 게 이 직업이란 생각을 최근에 하고 있어요. 절 선택해 준 사람들로부터 제 일은 시작되고, 그런 시작에 걸맞은 만족이나 기대를 채울 수 있기 위해, 잘 활약할 수 있는 경우의 일만 수락하려고 해요. 이 일은 돈 때문에 취향 접고 간다라고 생각되는 부류의 일들은 가급적 피하고 매 작업마다 진심으로 결과물 앞에 떳떳할 수 있겠다 싶은 것들을 가급적 만들려고 하는거죠. 다만 제 취향이 광범위해서 특정 장르에 기준하기보단 주관과 잘 맞거나 제 생각에 동의해 주시는 분들이 계실 때 좋은 결과를 위해 더 노력하게 되죠.
여행하듯, 일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방법
처음에는 해외 촬영을 갈 기회가 없으니, 사진 촬영이나 VJ정도를 요구하는 투어 등을 많이 따라 다니면서 경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촬영을 가서 남는 개인 시간에 소스를 찍어오던 식으로 'Something to Someone' 시리즈를 시작했고요. 말 그대로 정해진 여정을 따라 흐르며 찾은 장면들로부터 이야기를 엮어보는 형식의 작업이었습니다. 이런 예정 없는(?)촬영이 예전부터 워낙 익숙하다보니. 로케이션 촬영을 할 때는 꼭 현지에 미리 가서 콘티를 작성하고자 합니다. 아니면, 아예 콘티를 생각하지 않고 찍을 것들만 생각하면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접근해 볼 때도 있고요. (카더가든 'Island', 혁오 'Panda Bear' 등).
제 나름대로 뮤직비디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있는데, 바로 음악을 듣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것. 음악이 상상력을 자극하도록, 저는 제가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음악을 듣고 뮤직비디오를 보는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 마음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폭제가 되도록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오만과 편견’ 에서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데, 만남인지, 헤어짐인지, 어떤 상관관계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공드리에 나오는 두 남녀는 그래도 어떤 장면에선 손을 잡기도 했었죠. 그리고 인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특정한 비유나 보편적이지 못한 이해를 부를 수 있는 것들을 거의 배제해요, 마치 움직이는 동화책을 쓰는 기분으로 그림들을 구성해 봅니다. 때때로 뮤비나 영화를 보다보면 어떤 장면 속 디테일 때문에 몰입에 방해 받을 때가 있었거든요. 특정한 비유들이 코드에 안 맞는게 거슬려서 다른 재밌는 것들을 놓친다던가요. 그런 부분이 최소화 되도록, 뮤비는 공감대를 열어놓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강의를 준비하면서 쭉 작업물을 다시 보다가 저도 신기했던 게 있었어요. 처음으로 돈 받고 찍은 뮤직비디오가 가장 최근에 찍은 수지씨 'Holiday' 비디오랑 비슷한 거 같아서요. 보이는 그림은 다르지만, "언덕으로 사람이 걸어간다"가 비주얼 키(Key)더라고요. 이걸 무슨 생각으로 연출 하고 편집 했을까. 이런 류의 영화 장면을 좋아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무의식 중에 내재된 게 있나. 재밌더라고요.
공드리 콘티도 보면 똑같아요. 산, 길, 그리고 커피를 마신다. 이정도. 저는 그런 가장 일상적인 행동들 안에 가장 아름다운 게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자주 하고.. 그걸 비디오로 설득하고 싶은데 다큐멘터리나 작은 규모의 비디오로 시작을 했는데, 있는 걸 있는 그대로 보여 줬을 때 설득되지 않는 경험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조금 더 특별한 스타일링이나, 비주얼적인 톤 앤 매너들을 설득하는 도구로 좀 더 찾기 시작했죠.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비디오
비디오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에는 의뢰를 받은 일인데도, 갤러리에 제 작업을 만들어 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해야 한다는 생각을 과도하게 하면서 일하다보니, 과정 중에 많은 고집을 부리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영상은 감독님께 아니다 이런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그 말이 스스로에게 경종을 울린 게 있었어요. 또, 예산이 많이 없는 작업을 하다보니 이런저런 핑계가 많았습니다. 시간, 돈 그런 게 좀만 더 있었으면. 그런게 쌓일수록 점점 더 비디오그래피라고 올려놓고 그러는 게 싫어졌죠. 그래서 예를 들면 일을 주는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는 프로젝트들. 내 최선이 이해되는 방식을 찾아보자, 변명할 필요가 없는 거를 하자고 생각하게 됐던 거 같아요.
'위잉위잉'(혁오의 뮤직비디오) 전후의 언제쯤, 어느 피디님이 우연히 연락이 왔어요. 미술관 그룹 전시에 있는 제 작품을 보시고. 티비 프로그램 프로그램 사이에 작가를 소개하는 영상을 내보내는데, 제 비디오를 내보내고 싶다고 연락이 온거죠. 그래서 당시에 티비라는 포맷에 적합하고, 영화 같긴 한데 새로운, 재밌는 게 없을까 해서 만들었던 필름이 ‘Something to Someone’ (썸띵 투 썸원) 시리즈인데요. 이걸로 혁오를 찍기 이전에 이런 저런 바이럴 비디오를 많이 맡아서 할 수 있었습니다.
불완전한 이야기가 담긴 짧은 시리즈였는데 반응이 좋아서 여러 편 만들었어요. 혁오 앨범 자켓을 그렸던 노상호 작가님이 글을 썼는데, 글로벌 정서에 맞게 조금씩 각색했어요. 뉴욕 영어도 있고 불어도 있고 영국 영어도 있고. 다양한 감정들을 다양한 언어로, 그게 하나에 모여있으면 재미있는 하모니가 되지 않을까. 아마추어 더빙에, 그저 철저히 여행자가 볼 수 있는 시선을 담은 촬영으로 이야기를 끌어냈죠. 비디오를 시작했을 때 그 비디오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야 했고, 또 그걸 해결했고, 순수하게 제 꺼라고 할 수 있는 비디오를 갖고 싶었고. 처음에는 커머셜한 것들을 다 제 꺼라고 하고싶었는데 그러다보니 고집이 생기고, 충돌이 있으면서 극복하고 싶어 만든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작업을 하면서 '난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결국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푸는 거에 관심이 있구나' 느꼈어요. 만들 때는 다 묶어서 장편으로 편집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2년 정도 걸쳐서 찍었는데 편집해보려고 파일을 모아놓고 보니 엄두가 안나서 놔두고 있습니다.(웃음)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그의 작업 방식
제가 작업할 때. 음악 해달라거나, 글 써달라거나 그렇게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이 꽤 있어요. 혁이(오혁)도 그렇고요. 근데 처음부터 모두와 친구였던 건 아니었어요. 공연 끝나고 나서, 길가다가, 대뜸 제 번호를 주면서 "안녕하세요 저는 누구입니다 음악이 좋은데.."하면서 음악이 필요할 때 비디오가 필요할 때 서로 찾아보자 해서 작업 하기도 했거든요. 오히려 영상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다양한 방면으로 접근하면서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어차피 저를 알아서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까, 직접 찾아나선 것도 있고요. 그러다보니 다사다난한 일도 겪었지만요.
"저를 알아서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까, 직접 찾아나선 것도 있고요"
이건 초반에 만든 비디오인데요. 제가 공연장을 가는 걸 좋아하고 공연 보는 걸 좋아하니까. 알음알음 음악하는 분들을 모셔다 찍은 거에요. 음악하는 모습이 제일 멋있는데, 비디오도 없으신 분들도 있어서. 그래서 담고싶다고 먼저 연락을 했죠. 이때만해도 어려서 촬영도 다 혼자했어요. 방송국을 막 그만 뒀던 시기라, 방송에서 할 수 없었던 걸 해보자. 어설프지만 차라리 현장감을 담자. 손 떨리고 해도 흐름을 끊지 않는 원테이크로 해보면 어떨까하고. 새로 써보는 장비가 있으면 숍에서 ‘카메라를 다룰 줄 모르는데 알려주실 수 있냐. 저 이거 모르면 촬영장 가서 감독님한테 혼난다” 둘러대면서 작동법을 여쭙거나… 직원 분들이 굉장히 귀찮아하시고…(웃음)
여전히 계속 되는 고민
초기에는 혼자서, 그리고 한동안은 친구들과 함께, 지금은 같이 하는 분이 한 명 있고, 큰 프로젝트가 있으면 새롭게 뵙는 촬영 감독님들, 스태프 분들, 프리랜서 분들과 그때 그때 작업 하고 있어요. 여러 갈래의 시각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 저것 다 하던 한참 예전에는, 어떤 분은 저를 사진 실장님으로 알고 있고. 누구에겐 뮤비 감독이고, 또 한편으로 그래픽 디자이너로 알고 계셨고... 그 당시에 어느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자 지었던 이름이 'Visuals From(비주얼스 프롬)'이에요.
아직까지는 여러 이유 때문에 자체적으로 회사 규모를 많이 늘리지 말자고 결정하고 하고 있는 것도 있어요. 사람이 많아질수록 수입이 필요하고, 수입을 지키려면 처음의 생각과는 다른 결정과 일들을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나름대로 생존방식을 찾아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비디오를 하다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비디오를 하는게 맞을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맞을지. 항상 딜레마가 있어요. 그래도 굳이 소망 같은 게 있다면 누가 이걸 보고 정말 눈물 한방울 흘릴 가치가 있는 비디오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도? (웃음) 작지만 큰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1편 '영감을 주는 것들'[비주얼스프롬 편]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