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만 듣던 소년이 레코드 숍 주인이 되기까지
일반적인 궤도를 벗어나 스스로 영역을 넓혀가는 이 시대의 오디티들의 이야기 '오디티 토크'. 두 번째 주인공은 아는 사람은 아는 음악장인, 팝시페텔 김경진 대표였다. 우리는 그의 취향이 가득 담긴 팝시페텔에서 그가 꼽은 2017년 베스트 10곡을 함께 감상하고, 96년 서울음반 입사기부터 오랫동안 꿈꿔온 레코드 숍 주인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날의 이야기를 1, 2부로 나누어 공개한다.
* 지난 글 1부- '2017년 베스트 곡 10곡'에 이어 2부 -'김경진 대표의 음악 업계 20년 이야기'를 포스팅합니다.
가요만 듣던 소년, 핑크 플로이드에 빠지다
저는 80년대에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어요. 고1 때까지만 해도 매일 가요만 듣다가 본격적으로 음반을 사기 시작했어요. 제 용돈으로 샀던 음반들입니다(아래 이미지). 산울림, 들국화, 양희은, 이문세... 이분들의 작품도 굉장히 좋아했는데요. 당시 미국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한 <We Are The World> 앨범부터 존 덴버, 사이먼 앤 가펑클,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등의 음악을 들으며 팝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저 젖소가 그려진 앨범이 핑크 플로이드 앨범이에요. 팝시페텔 벽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너무 좋아해서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 작품을 굳이 벽에 붙여놨어요(웃음). 지금도 저는 '핑크'란 단어만 들어도 설레요. 처음에 들었을 때는 '뭐 이런 음악이 다 있어' 하고 치웠다가 어느 순간 핑크 플로이드에 빠지면서 '나중에 음악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생각했어요. 막연하게.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잘 몰랐죠.
라이너 노트를 쓰고 싶다는 꿈을 이루다
아직도 생각나는 순간이 있는데요. 제대할 때 송별회 자리에서 누가 앞으로 뭐할 건지 얘기해달라는 질문에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 "앨범 사면 해설지가 있잖아요. 전 그걸 쓰고 싶어요. 10년 안에 음반 안에서 제 이름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막연하게 이야기했던 건데 실제로 10년이 안돼서 쓰기 시작했어요. 음반사에 들어가서 제가 발매하는 음반들의 라이너 노트를 쓰기 시작했고, 20년 동안 한 2-300장은 쓴 것 같아요. 제가 라이너 노트를 썼던 앨범들입니다.
저는 라이너 노트나 앨범 리뷰를 쓸 때 최소한 20번 이상은 듣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좋은 건지 별로인지 잘 구분이 안 가요. 그런데 그렇게 듣다 보면 조금씩 윤곽이 잡힙니다. 체계적이랄까요. 하나씩 차곡차곡 쌓여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첫 회사 서울음반
저는 음반사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집에서는 공무원 준비하라고 했지만 음악을 좋아하니까 음반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서류전형이 되고 시험을 보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두 과목을 봤습니다. 팝 상식이라는 과목과 무역 영어. 시험 문제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경험을 했어요. 영어는 거의 망쳤어요. 팝 상식은 이런 문제들이 나왔어요. 비틀즈의 5대 명반을 쓰시오. 3대 기타리스트에 들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들어보니 500몇명이 지원했다고 하더라고요. 내부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대요. 한 사람은 팝 상식이 90점인데 영어가 100점. 저는 팝 상식이 100점인데 영어는 70점. 내부에서 음악을 아는 사람을 쓰자고 해서 제가 들어가게 됐습니다.
전국의 아줌마들이 헤비메탈 앨범을 산 이유
서울 음반에 들어가고 발매한 주요 앨범이 이겁니다. 헬로윈, 스트라토바리우스 이런 헤비메탈 앨범을 많이 발매했어요. 20년전만해도 헬로윈 앨범 나오면 기본 5만장 나갔습니다. 가수들이 한정판으로 앨범 찍는다면서 50만장 찍고 그랬던 시절입니다. 스트라토바리우스의 '에피소드'란 앨범이 20만장 나갔어요. 왜냐. 스트라토바리우스의 Forever 노래가 첫사랑이란 드라마의 OST로 쓰였어요.
우리나라 TV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입니다. 시청률이 65.8%인가 그래요. 이 앨범이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거든요. 그런데 마지막 곡만 발라드인 Forever입니다. 아줌마들이 기대하고 샀다가 반품 소동 나고 그랬어요 (웃음). 아무튼 20만장이란 어마어마한 숫자가 판매됐고, 서울음반 통틀어서 베스트셀러가 이거였어요. 우연치않은 성공이었던거죠.
저기 랩소디란 팀의 음악은 에픽 메탈이라고 해요. 할리우드 메탈. 왜 에픽메탈이냐면 굉장히 드라마틱하고 서사적이고 가사가 거의 왕좌의 게임 수준이에요. 랩소디의 앨범은 그 당시에는 1만장 정도 나갔었는데 나중에 알게된건데, '우리나라에 획을 그었던 발매였구나'하고 혼자 뿌듯해한적이 있어요. 일단 영상을 볼게요. 에머럴드 소드(Emerald Sword)라는 곡입니다. 누가 '야구장 갔더니 사람들이 랩소디 노래를 부른다'고 하는거예요. 무슨 소리냐 했더니 에머럴드 소드의 후렴구가 두산 베어스의 '승리를 위하여' 응원가가 되었더라고요 (웃음).
뿌뚜마요 월드뮤직 앨범
서울음반 시절 한달에 6-7장씩 라이센스 해외음반들을 국내에 계속 꼬박꼬박 발매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월드뮤직의 붐이 있었죠. 그 계기가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영화와 음반 때문이었어요. 월드뮤직 붐이 일면서 뉴욕에 있는 뿌뚜마요 월드뮤직이란 회사랑 계약을 해서 수입을 했어요. 전부 컴필레이션 앨범이고요 커버가 이렇게 예뻐서 크게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사랑을 받았던 앨범들입니다.
가요 제작을 시작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가요 제작을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재발매를 많이 했어요. 서울음반이 마스터라잇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 중 외인부대, 부활, 다섯손가락 저런 앨범을 재발매했었고, 김민기 선생님의 박스셋도 발매했었죠. 한대수 선생님하고도 이 때 인연이 돼서 2005년에 전집을 다룬 박스 세트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씨와 함께 다른 프로젝트인 스윗피 앨범도 발매했었고, 서울전자음악단 등 가요 쪽에서도 메인 스트림이라기보단 마이너 성향의 음악을 발매했습니다.
로엔 - 본격적으로 가요 제작, 투자
2004년에 서울음반이 SKT에 인수합병이 돼요. SKT가 대주주가 되죠. 2007년이었던가 2008년 이즘에 로엔으로 이름이 바뀌어요. 저 이름이 카카오엠으로 바뀌었죠 얼마전에. 어쨋든 가요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고 박기영 5집을 제작할 무렵 저기 있는 김홍기 대표가 들어와서 함께 일을 했습니다. 상상밴드, 싱어송라이터 정재형도 했었고요. 정재형씨는 그때는 아는 사람만 아는 뮤지션이었어요. 대중적인 인지도는 없었는데 앨범 하나 내고 2-3년 후에 무한도전에 나오고 다들 알아보더라고요.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콘텐츠의 흥망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업계에 많은 사람들이 저보고 박스의 제왕이라고 해요. 제가 산울림을 학교 다닐 때 굉장히 좋아했어요. 어떻게 보면 꿈을 이뤘죠. 학창시절의 영웅을 만나서 그의 모든 작업이 담긴 앨범을 하나로 묶어서 냈으니까요. 김광석 박스세트는 CJ 갔을 때 만든 작품입니다.
로엔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가요 투자를 담당했어요. 앨범을 계약해서 유통권을 가져오는 거예요. 완전 신인이었던 윤하 앨범도 성공했고, 사랑안해가 수록된 백지영, 텔미가 수록된 원더걸스 앨범 등에 투자했습니다.
CJ - 버스커 버스커 1집을 제작하다
로엔에서 가요 투자를 5년 정도 하다가 CJ로 옮겼어요. 원래 저는 회사를 한 곳에서 오래 다녀야된다는 주의였어요. 그런데 15년정도 한 곳에 있다보니까 고인 우물처럼 침체된 듯, 안착하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 생각이 들 무렵 마침 CJ에서 콜이 와서 당시 엠넷으로 갔습니다. 가고 얼마 안돼서 영화 부문, 게임이 합쳐져서 E&M이 됐고요. 여기선 2년정도 있었어요. 한 회사에서 오래다녀야된다 주의였지만 영혼을 빨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2년만에 나왔는데요, 그래도 2년 동안 재밌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슈퍼스타K(슈스케)가 있어요. CJ의 음악제작팀으로 슈스케 3 일을 했는데요, 버스커 버스커, 울랄라세션, 투개월 등 개성 강하고 핫한 아티스트들이 많았던 시기였어요. 그 때 버스커 버스커와 앨범을 같이 내게 되면서 작업을 하고 1집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로 대박이 날 줄은 생각도 못했죠. 그 때 슈스케 출신은 공중파 출연이 어렵고, 멜론 추천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프로모션하지 생각하다가 장범준이 만화를 잘 그리거든요. 애니메이션과니까. 그래서 네이버 웹툰과 연계해서 앨범 발매되기 전에 만화 4편을 연재합니다. 이게 또 대박이 났어요. 그래서 앨범이 나왔고, 그 이후 얘기는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실 거예요. 올해 봄이 되면 또 차트에서 보이겠죠?
음악 공간 스트라디움의 부관장이 되다
김광석 박스세트를 마지막으로 CJ를 나왔고, 그 후에 들어간 곳이 아이리버예요. 왜 이 MP3 만들던 회사에 들어갔냐면, 여기 보이는 디바이스가 고음질 음원 플레이어입니다. 아스텔앤컨이라는 모바일 하이엔드. 저게 370만원이에요. 손질없이 고음질의 음원을 재생시켜주는 기계인데요, 하드웨어를 만들고 고음질 24비트를 서비스하는 그루버스라는 음원 서비스를 만듭니다. 아이리버에서 아스텔앤컨을 체험시켜주기 위해 이태원에 스트라디움이라는 음악 감상 공간을 만들게 돼요. 청음실 같은 정도의 공간을 생각하다가, 그 무렵 SKT가 아이리버를 인수하고 사이즈를 키우게 됩니다.
스트라디움은 공연도 하고, 음악 감상도 하고, 전시도 하는 공간이었는데 저는 부관장 역할을 했었어요. 현대카드 바이닐앤플라스틱 바로 맞은 편에 있었는데요, 1년 반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스트라디움에서 음악도 소개해주고, 강좌도 하고, 감상회도 하고, 멋진 공간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쉽죠. 문을 닫게 되면서 저도 회사를 나왔고 여러분이 지금 계신 이 공간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꿈꿔왔던 공간, 팝시페텔
팝시페텔은 레코드 숍이라는 외형을 띄고 있지만 제가 의도하는건 음악을 같이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거예요. 제가 알고 있는게 많진 않아도 공유하는 모습을 늘 꿈꿔왔는데 어쨋든 이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오늘이 딱 석달되는 날이네요. 12월 9일날 오픈했으니까 꽉 채워 석달. 여기 보이는 것들은 전부 다 파는 겁니다. 책, DVD, 블루레이, CD, LP 다 파는거고요. 이건 커버 아트와 관련된 책인데 작년에 번역을 하고 12월에 출간됐습니다. 힙노시스라고 레드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폴매카트니 등 앨범 커버를 디자인한 디자인 그룹의 카탈로그예요. 이게 한 달만에 1,500부가 다 나가서 2쇄가 이번주에 입고 됐다고 하더라고요. 저런 류의 책 치고는 보기 드문 일인데, 앞으로 이런 작업도 할 예정이고, 책 작업의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고맙습니다.
* 팝시페텔에서는 매주 다른 주제로 강연이 열립니다. 어떤 날은 비틀스, 어떤 날은 핑크플로이드, 지브리, 마블, 픽사 등. 음악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팝시페텔 페이스북에서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