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티의 시대
'스페이스 오디티'의 브랜딩을 담당하게 되며 늘 고민하게 되는 키워드에는 음악, 우주, 그리고 오디티가 있다.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우리의 로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출입증, 작년 가을에 진행했던 '리프트오프', 선물로 만들었던 굿즈 등 우리의 다양한 작업에 녹여져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키워드가 '오디티'다. 쉽게 말하면 '별종, 괴짜'라는 의미의 '오디티'. 개인적으로도 남들과 똑같지 않은 길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며 편견을 부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회사 차원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오디티'와 일하는게 우리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디티에 주목하는 이유, 지금이 오디티의 시대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괴짜인게 최고다
넷플릭스 히트작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 시즌 2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죽었다 살아난 뒤 '좀비 보이'란 별명 때문에 괴로워하는 윌을 위로하며 형 조나단은 이렇게 얘기한다.
그래 너 별종이야. 근데 그게 뭐 어때서?
그냥 평범해지고 싶어? 남들하고 똑같으면 좋겠어?
괴짜인게 최고야.
이어서 이렇게 덧붙인다.
난 지루하고 개성 없는 아무개랑 친구 하기보다는 좀비 보이랑 친구 할 거야.
잘 봐. 둘 중에 누구랑 친구 할래? 보위 아니면 케니 로저스?
맞아 붙여놓기 민망하지.
중요한 건 평범한 사람이 세상에 의미 있는 걸 이룬 적은 없다는 거야.
데이빗 보위는 새로운 앨범을 낼 때마다 지기 스타더스트, 알라딘 세인, 화이트 듀크 등 마치 옷을 갈아 입듯 수많은 페르소나로 분했던 변신의 귀재였다. 음악도 글램 록부터 재즈까지 장르의 구분 없이 다양한 음악을 만들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사람인지 외계인인지. 하나의 틀에 규정 짓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의 아이덴티티는 여러 경계선을 넘나들었다. 보위는 그 누구와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대사 중 데이빗 보위가 나온 것도 반가웠지만(참고로 스페이스 오디티는 데이빗 보위의 노래 제목이다), 마지막 대사는 더 반가웠다. 우리가 '오디티'를 좋아하고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기분 좋게 세상을 놀래키는건 데이빗 보위와 같은 괴짜들이다.
오디티의 정의
오디티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이상하거나 특이한, 기이하고 색다른 사람[것]. 영어로 뜻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an odd or remarkably unusual person, thing, or event
- dictionary.com
'remarkable'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금은 기이하고 이상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멋진 사람이나 어떤 것을 오디티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을 일반적인 궤도를 벗어나 제각각의 우주를 유영하는 '스페이스 오디티'로 보고 있다. 아무도 가지 않던 미지의 세계를 향해 몸을 맡겼던, 데이빗 보위 노래 'Space Oddity'의 주인공인 톰 소령처럼.
휴 잭맨 주연의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에도 이런 '오디티'들이 등장한다. 바넘(극 중 휴 잭맨)은 세상에 없던 쇼를 만들기 위해 전역에서 별종들을 데려왔다. 수염이 나는 여자, 난쟁이, 온몸이 문신으로 덮인 남자 등.
평범하지 않아서, 너무 별나서 손가락질받고 위축되어 있던 그들은 바넘이 기획한 공연의 주역이 되며 공연 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말 그대로 인간 '오디티'들이 모여 지상 최고의 쇼를 만든 것이다.
극 중 휴 잭맨은 이렇게 말한다.
남들과 똑같으면 성공할 수 없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잔인한 말과 시선, 질타를 받으며 스스로를 가두고 숨겨왔던 그들은 바넘과의 공연을 통해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이 '오디티'들은 노래를 통해 이렇게 외친다
우리는 전사들. 과거의 우리가 아냐
주저앉진 않을 거야, 당당히 살 거야
우린 멋진 존재니까
기다려 내가 갈 테니
나만의 발걸음으로 나아가리
남의 시선은 두렵지 않아
누구에게도 미안하지 않아
이게 나니까!
실제로 마지막에 크레딧이 올라갈 때 'Oddity' 단어가 등장한다. Dancer Oddity #1, Dancer Oddity #2 이런 식으로 <위대한 쇼맨>의 공연 캐스트가 '오디티'에 비유되어 있었다. '별종'이지만 다르기 때문에 누구도 본 적이 없었던 공연을 만들어내며 주인공이 된 오디티들. 공연을 통해 비로소 온전히 '자기다움'에 가까워진 그들은 남과 다르다는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만들어버렸다.
영화 속에서도 그랬지만,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이 '자기다움'이, '남과 다름'이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시대다.
지금은 오디티의 시대
현재 우리는 세대마다 보는 매체가 다르고, 개개인이 점점 크리에이터이자 미디어, 플랫폼처럼 변하는 환경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만 가지고 있으면 사진이든 영상이든 원하는 콘텐츠를 손쉽게 만들 수 있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콘텐츠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빠르고 쉽게(저비용으로) 세상에 퍼져나간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예기치 못한 콘텐츠가 터지기도 한다. 새삼스러운 콘텐츠의 시대에 이전부터 숙명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온 '오디티'들에게 이런 환경은 예전에는 없던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콘텐츠의 힘' 자체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콘텐츠 기획, 제작자로서의 송은이가 있다. 그녀는 고정 출연 프로그램 없이 여성 예능인이 설 자리가 많지 않다는 한계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판을 벌리며 극복해나갔다. 김숙과 함께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팟캐스트를 시작했고. "하고 싶은 걸 직접 만들어 보자"며 콘텐츠랩 비보티비를 만들었다.(1) '비밀보장'의 코너이던 '김생민의 영수증'을 공중파까지 진출시켰고, 최근에는 '셀럽 파이브'까지 MV 200만 뷰 돌파에 실검 1위까지 찍으며 연달아 히트시켰다.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그녀는 그녀만의 방식대로 예능의 영역을 스스로 넓혀가고 있다.
붉은 행성을 향해 날아가는 일론 머스크의 빨간 스포츠카
송은이에 이어 최근 가장 좋은 오디티의 예시는 이게 아닐까 싶다. 불과 며칠 전, 미국 동부시간으로 2월 6일 오후 3시 45분에 지구의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킨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테슬라와 스페이스 X의 수장 일론 머스크가 스페이스 X의 '팰컨 헤비(Falcon Heavy)' 로켓에 빨간색 스포츠카를 태워 우주로 쏘아 올린 것이다. (2)
이 빨간색 스포츠카는 일론 머스크가 직접 몰고 다니던 테슬라 로드스터로, 운전석에는 더미 파일럿인 '스타맨'이 앉아 있고, 데이빗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 노래가 무한 재생되고 있다.(3) 차의 회로기판에는 'Made on Earth by humans'라고 적혀있다.
사실 이 전기차를 우주로 쏘아 올린 건 '팰컨 해비' 로켓 시험 발사의 일부였다. 일론 머스크는 '붉은 행성(화성)을 위한 빨간 차'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올렸다.
"새로운 로켓의 시험 비행은 대개 콘크리트 또는 강철 블록을 싣습니다. 그건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어요. 물론, 무엇이든 지루한 건 끔찍합니다 - 특히 그게 회사라면요. 그래서 우리는 특별한 것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우리에게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를요.
우리는 화성의 궤도에 스페이스 오디티가 흘러나오는 오리지널 테슬라 로드스터를 보낼겁니다.
평범하게 로켓에 콘크리트를 실어 발사하는 대신 머스크는 자신이 직접 타던 차를 우주로 내보냈다. 그것도 '스페이스 오디티'의 음악을 튼 채로. 이 이야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우주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 조차도. 머스크의 빨간 로드스터가 우주의 궤도에 진입하기까지의 광경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었고, 현재까지 '스타맨의 생중계 영상'은 조회수 1200만 회를 넘겼다.
스페이스X는 팰컨 헤비의 시험 발사에 성공하며 "민간 우주여행 시대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머스크는 화성에 인류를 정착시키겠다는 엄청난 꿈을 꾸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터무니없어할 꿈을 향해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음에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그는 오디티 중의 오디티다.
우리 주위의 오디티를 찾아서
위와 같이 모두가 알만한 사람만 오디티인 것은 아니다. 아는 사람들은 아는 숨은 고수들. 수면 위에 떠오르지 않은 오디티들도 많다. 스페이스 오디티는 음악 업계의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오디티들)과 함께 협업하고 있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끼리만 듣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사이트가 넘친다. 그래서 올해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주변의 오디티를 주인공으로 하는 '오디티 토크'를 열고 있다.
지금까지 두 번의 오디티 토크를 마쳤다. 오디티 토크의 첫 번째 주인공은 뮤직비디오 감독 송원영이었다. 나얼 MV부터 멜론 브랜드 필름 '우리 지난날의 온도', '세로 라이브', '이슬 라이브'까지. 함께 지난 작품을 감상하며 송원영 감독은 그동안 걸어온 길과 콘텐츠를 만드는 노하우에 대해 들려주었다. 관객으로부터 "이런 자리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정도로 여운이 길게 남는 시간이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곳에 정리되어 있다: 찌질하게, 은밀하게)
두 번째는 20년 넘게 오직 음악 일만을 해오다 최근 동교동에 레코드 숍 '팝시페텔'을 오픈한 김경진 팝 칼럼니스트와 함께 했다. 그는 수천 장의 음반과 DVD, 블루레이를 모아 온 콜렉터이며, 핑크 플로이드, U2부터 지브리 애니메이션 OST까지 수백 장의 음반 해설지를 써온 숨겨진 음악 장인이다. 그의 취향이 가득 담긴 팝시페텔에서 2017년 베스트 송 10곡을 함께 감상하며 레코드 숍 주인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예상보다도 시간이 길어졌지만 만남이 끝난 이후에도 사람들은 공간을 바로 떠나지 않았다. 음반과 책을 들여다보며 음악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건 어렵다. 그럼에도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끈다. 이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때로는 작은 감동과 용기를 준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의 혹은 어떤 브랜드의 팬이 된다. 이게 우리가 '오디티'를 주목하고 존경하고 응원하는 이유다.
* 조금 더 편하고 가깝게 오디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오디티 토크'는 앞으로도 한 달에 한 번씩 계속될 예정입니다. 다음 오디티 토크도 기대해주세요.
* "[Oddity Talks] EP.02 팝 칼럼니스트 김경진의 1020" 포스팅이 업로드될 예정입니다.